
우리는 매일같이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직장에서의 냉혹한 인사 평가, SNS에 도배되는 타인의 화려한 일상,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타인의 기대는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주범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의 작은 부속품처럼 느껴지며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합니다. 이처럼 훼손된 자존감은 단순히 거울을 보며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자존감은 아주 작더라도 '내가 해냈다'는 구체적인 성공 경험이 축적될 때 비로소 단단해집니다. 승마는 500kg이 넘는 압도적인 체급의 동물을 내 의지대로 이끄는 경험을 통해,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단숨에 수직 상승시키고 정서적 주체성을 회복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심리 훈련입니다.
첫째,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의 존재' 자체로 평가받는 절대적 수용의 경험 몇 년 전, 저는 거듭된 업무 프로젝트 실패와 인간관계의 좌절로 인해 심각한 자존감 하락을 겪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낙인찍었고,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 회피하곤 했습니다. 도망치듯 시작한 승마장에서 제가 가장 먼저 위안을 얻은 것은 말의 '편견 없는 눈동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학벌이나 연봉, 외모, 실패한 이력으로 저를 평가했지만, 말은 그런 인간 세계의 조건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제가 보내는 손길의 다정함, 목소리의 떨림, 그리고 안장 위에서의 호흡만으로 저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말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털을 빗겨주는 시간은, 사회에서 덕지덕지 붙여진 부정적인 꼬리표를 떼어내고 온전한 '나'로서 존중받는 경이로운 정서적 치유의 첫걸음이었습니다.
둘째, 두려움을 극복하고 리더십을 증명해 내는 '자기 효능감'의 폭발 자존감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고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입니다. 처음 말 위에 올라탔을 때, 내 맘대로 통제되지 않는 거대한 근육 덩어리 위에서 저는 철저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말이 조금만 고개를 흔들어도 지레 겁을 먹고 고삐를 놓칠 뻔했습니다. 하지만 교관님의 말씀이 저를 벼락처럼 때렸습니다. "기승자가 두려워하고 망설이면 말은 대번 알아채고 당신을 무시합니다. 당신이 확신을 가지고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리드해야 말도 안심하고 당신을 따릅니다." 그날부터 저는 두려움을 숨기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는 연습을 했습니다. 말에게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탑승객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Leader)'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종아리로 말의 배를 부드럽게 감싸고 단호하게 고삐를 쥐며 출발 신호를 보냈을 때, 그 육중한 생명체가 거짓말처럼 제 신호에 맞춰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 순간의 짜릿함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 거대한 생명체를 안전하게 리드했다"는 성취감은 제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은 패배주의를 산산조각 냈습니다.
셋째, 거울 뉴런이 가르쳐준 감정 조절 능력과 단단한 평정심 말은 기승자의 감정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거울처럼 반사하는 매우 예민한 동물입니다. 어느 날 기승 중에 제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속으로 화가 나 있고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자, 제가 타던 말 역시 예민하게 콧김을 뿜으며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Spooking) 반응을 보였습니다.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제 안의 요동치는 감정부터 다스려야 했습니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근육의 긴장을 풀며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다독이자, 놀랍게도 말 역시 귀를 뒤로 젖힌 채 긴장을 풀고 부드럽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엄청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외부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감정 조절(Emotional Regulation) 훈련을 말이라는 훌륭한 파트너가 직접 가르쳐 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장 밖으로 이어진 변화: 내 삶의 고삐를 틀어쥐다 말 위에서 훈련된 자존감과 정서적 안정감은 승마장을 벗어나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고 제 삶 전반으로 강력하게 전이되었습니다. 500kg의 생명체와 호흡을 맞추며 리더십을 발휘했던 기억은 제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저는 더 이상 타인의 비판에 쉽게 무너지거나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직장 회의에서도 제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부당한 상황에서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승마는 저에게 단순히 운동 기술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고삐는 온전히 내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가장 위대한 인생 학교였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자아를 찾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안장 위로 올라가 보시길 바랍니다.